카테고리 : 소설

콘크리트 사이에도 천사는 내려온다. / 1

  눈이 흩날리는 겨울 밤. 가로등 불빛에 어둠이 맥을 못 추고 있는 10시 무렵에 그는 내게 커터칼을 들이밀었다. 드드득 하는 소리가 소름끼쳤다. 마치 그의 몸이 커터칼에게 밀려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곧 그는 손을 들고 칼을 휘두르려 했는데, 그것이 마치 칼이 그를 휘두르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가 허공을 갈랐다. 아니,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내 가슴으로 칼날이 스치듯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는 어느새 그를 내 품에 안고 있었다.

   눈발이 점점 거세졌다.

   눈물이 점점 거세졌다.

   이상기후의 징조인지 내리던 눈이 급히 녹으며 눈가를 스쳐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춥지는 않았다.

   오히려 따듯한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따듯한 무언가가 생명이 끊어지는 소리를 내며 품안에 번져나가고 있었다.

   Angel who was behind the Skyscraper.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맨발로 차갑게 걷고 있었는데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것이 서글펐다. 눈물이 더욱 거칠게 눈가를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떨어진 눈물이 눈을 녹이고, 곧 나의 맨발이 짓밟았다. 얼어붙는 행동의 반복. 발끝이 저리던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격하게 떨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들은 주위에 널린 고층빌딩처럼 그렇게 무생물인 마냥 내 주위에 서 있거나 흘러갈 뿐이었다. 고독감이 심장을 통해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졌다. 소름이 돋았다.

   ‘인간이란 이렇게까지 무신경한 생물인가.’

   나는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아 진로를 변경했다. 이런 몰골로 대로변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멍청한 일이었던 거다. 도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누군가의 관심을 원한다면 자기가 먼저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용기도 없이 인파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던 것이다.

   몸을 돌린 내 눈앞에 나타난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은 좋은 도피처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 고독의 통로. 그늘에서 녹아내린 눈이 축축하게 벽을 적시는 곳. 그곳은 완벽하게 나를 감싸 안으며 안으로, 더 깊은 곳으로 나를 이끌어갔다.

   그 안에서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다. 그것이 이 절망 가득한 상황을 타개할 것이든,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도피처에서까지 무언가 얻기를 바라는 나의 욕심인 것이다. 실제로는 적당히 골라 들어간 골목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불가능한 일을 소망한다. 알고는 있지만 고칠 수는 없었다.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지경이 된 것이 아니냐고 자책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계속 말도 안 되는 것을 바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을 이루기 위해 나아갔다. 그리고 나아가던 도중 주변을 보니 실제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다. 방향을 잘못 잡은 이가 도달하게 되는 정점. 자신을 알지 못한 사람이 도착하게 되는 종착역.

   검은 길에 들어선 뒤로 멎었던 눈물이 다시 넘쳐흘렀다. 다시금 서글퍼졌다. 난 여태까지 도대체 뭘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 절망을 지우기 위해 나는 골목의 끝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쥐라도 밟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구정물이 얼굴까지 튄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 버린 물을 맞았지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 여태까진 그런 일 없었지만 혹시 이번엔 내가 원하는 대로 될지도 몰라. 저 골목의 끝에 도달하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무언가를,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쓰레기에 걸려 다리에 생채기가 났지만 그래도 걸었다.

   버려진 전선에 걸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걸었다.

   쓸 데 없는 희망에 매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그 길이 향하는 곳은 앞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앞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걸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곳은 벽이었다.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더듬은 그곳엔 분명한 벽이 있었다. 콘크리트로 대충 건조된 무심하고 차가운 장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최소한 맞은편의 큰 길이 나오길 바란 것도 욕심이었단 말인가. 정말이지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이제 여기 쓰러져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인 그곳은 이제 안식처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세 방향의 콘크리트, 눈앞은 어둠뿐. 눈이 내리는 하늘은 이런 곳에까지 태양빛을 비춰주지 않았다. 허망하다.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떨어지는 눈송이와 암회색의 구름만이 보일 뿐.

   하늘에서 내려온 눈은 조심스레 차곡차곡 나의 몸을 덮어갔다.

   젖은 몸이 너무나도 차가웠다.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인생마저, 혼마저 얼어붙는 것 같았다. 혹시 죽고 나면 얼어붙은 영혼이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여기서 머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웃기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욱 더 웃기는 생각을 해버렸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인생에서 가장 희한하고 비현실적인 소망을 바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천사라도 내려와 살려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끝장이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촉각이 끊겼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차가움도, 아픔도, 내 몸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지 않는다.

후각과 청각이 끊겼다. 구정물 냄새도, 골목 바깥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도심의 소리도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시각은 가장 마지막에 증발하게 시작했다. 어둠이 더욱 어두워지는 이상한 장면을 마지막으로, 곧 모든 것이 사라질 터였다. 흐릿하게 사람의 발이 보인다.

  ‘뭐야……. 사신이라도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머리 위에 그의 손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와?’

  그와 동시에 내 모든 감각이 돌아왔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촉각마저도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 즉시 차가움도, 아픔도, 분명 아직도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어렴풋한 느낌도,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도, 그가 내뱉는 말소리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나랑 인생을 교환해보지 않을래?”

  그는 웃고 있었다. 캐주얼한 정장 스타일의 옷을 빼입은 그는 여전히 나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내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by 로스나힐 | 2008/04/13 05:06 | 소설 | 트랙백 | 덧글(0)

초현실주의 . 프롤로그 // UC NOVEL

by 로스나힐 | 2008/03/04 23:02 | 소설 | 트랙백 | 덧글(0)

요염한 운중 기담 / 5

본 소설은 실제 인물과는 별로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실제 사건이나 행사와는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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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한 운중 기담 / 5

- 로스나힐


 30분이 지나 집합시간이 되었다. 문중일당이 전부 모였다. 아니 사실 전부는 아니다. 의외로 운중의 세력은 거대한 것이었다. 아무튼, 그 날 단체로 코스프레를 하기로 한 사람들은 전부 모였다. 운중의 쓸 데 없이 화려한 드레스를 필두로 다크니스와 시로의 세미정장, 험프티와 덤프티는 똑같은 드레스 차림이었고, 리본은 제복스타일의 롱코트, 나비년은 드레스차림이었는데 사실 입은 옷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운중은 팀원의 옷을 적당히 점검하고는 사진을 찍으러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위치는 회장 근처의 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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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스나힐 | 2008/02/29 21:39 | 소설 | 트랙백(3)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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