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13일
Craneske - SIR / Queen .3

Queen .3
네고타는 폐인 같은 모습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금발의 매끄럽고 길었던 그녀의 머리는 푸석푸석해져 뒤엉켜 있었고, 여기저기 넘어져 긁힌 상처들이 온몸에 산재해 있었다. 나올 때 입고 나왔던 옷은 여기저기 뜯어지고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신발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발을 뭉그러지게 만들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사진을 내보이며 자신의 아이를 수소문 했지만 그녀의 허름한 모습 때문인지 대부분이 미친년 취급하며 욕설을 퍼붓거나 무시하기 일쑤였다. 도시를 헤매며 세상의 인심이 흉흉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은 그녀는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아―.”
그녀는 한숨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참 안쪽으로 들어온 탓인지 높은 빌딩에 둘러싸여 어두컴컴한 골목은 걷는 인파와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시끌벅적한 소음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녀는 등을 빌딩 벽에 기댄 채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정적과 어둠이 눈을 뜨고 있어도 잠이 든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공간에서 그녀의 의식은 아득한 곳을 향해 서서히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갸릉―.”
갑작스런 고양이의 울음에 잠에 빠져들 참이던 네고타는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다. 어둠에 적응이 된 것인지 사물을 희미하게나마 인지하기 시작한 그녀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난 쪽은 골목의 안쪽. 만약 자신이 도둑고양이 떼의 영역이라도 침범한 것이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최대한 조용하게 골목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조용히 일어난 그녀는 골목 바깥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도록 발꿈치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었다. 골목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갸릉― 갸릉―.”
그녀가 다섯 발자국 째를 딛는 순간 다시금 고양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네고타는 조용히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연속되어 울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점차적으로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일곱 번째 울음이 울었을 때 그녀는 고양이가 자신의 앞에 도달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네고타는 조용히 눈앞을 살폈다.
“갸릉―.”
아주 가까운 곳에서 고양이의 소리가 들렸지만, 적어도 그녀의 눈앞에는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옆에도, 뒤에도, 다시 옆을 돌아봐도 고양이는 없었다. 실체가 없고 소리만 들려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아마도 고양이는 바닥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네고타는 자신의 왼편 벽, 눈높이 정도에 붙어있는 파이프 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도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양이 찾는 것을 포기하고 최대한 빨리 골목을 벗어나기로 했다. 그녀는 골목 바깥쪽을 향하기 위해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오른발이 바닥과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지면과 떨어진 자신의 발과 접촉하는 무언가를 인지했다. 털투성이의 따뜻한 물체.
“갸릉―.”
그녀의 바로 밑에서 검은 고양이가 노랗게 빛나는 두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꼬리를 들어 올려 활처럼 구부린 고양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네고타의 모습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뭐야 여자였나.”
고양이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버린 네고타의 뒤에서 낮은 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어둠속의 뒤편에서 네고타를 바라보던 사람은 호박색 불빛의 랜턴을 든 멍해 보이 사내였다. 그녀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경계심을 풀지 않는 것은 그녀의 오랜 습성이었다.
“그 녀석이 관심을 가지다니. 신기한 일이구만.”
“그, 그 녀석 이라니?”
네고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반쯤 풀린 눈으로 네고타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뒤쪽을 가리켰다.
“저 고양이 말이야. 이름은 조드(Jod)지.”
그가 가리킨 곳에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검은 고양이가 서 있었다. 활처럼 휜 채 높이 치켜들고 있는 꼬리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네고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움찔거리며 고양이를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고양이는 곧게 편 다리를 한 발짝씩 도도하게 걸으며 그녀를 쫒았다.
“걱정하지 마, 공격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아가씨 이름은 뭐지?”
“당신 고양이 인가요?”
도망가는 것을 포기한 네고타는 이미 고양이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자, 이곳에 그녀 외에 유일한 사람인 멍한 남자에게 물었다.
“음? 그렇다니까. 이름도 말해줬잖아. 조드라고. 그나저나 당신 이름, 이름 말할 생각이 없는 건가?”
“일단, 이 고양이부터 치워 봐요!”
허겁지겁 부탁하는 네고타의 모습에 남자는 피식거리며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다. 계속해서 네고타를 주시하던 고양이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꼬리를 내리고 순순히 주인에게로 돌아가 다리에 볼을 비비적대기 시작했다.
“자 이제 이름.”
네고타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만 물어대는 사내를 질렸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이름에 집착하는 거죠? 내 이름은 네고타에요. 네고타 로나. 이제 된 건가요? 그럼 이제 당신 이름과 직업을 알려줘요.”
“거참 당돌한 아가씨로군. 내 이름은 드러스트 노에(Drust Noe). 직업은 탐정이고, 저 안쪽 사무소에서 살고 있지.”
네고타는 자신을 탐정이라고 소개한 사내를 믿어야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탐정이라면 아들 헤르모트를 찾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탐정이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탐정이 사무소를 이런 어두컴컴한 골목 안에 차린다는 것이 이상했고, 자다 깬 것 같은 모습의 사내가 탐정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녀는 최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그에게 자신의 상황을 말해보기로 했다.
“탐정이라면, 혹시 사람 찾는 일도 도와줄 수 있나요?”
탐정, 드러스트의 대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물론, 그게 탐정의 본분중 하나니까. 도대체 누굴 찾고 있는데?”
네고타는 눈앞의 탐정이라 자청하는 사람에게 일을 부탁해도 되는 것일까에 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탐정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그대로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거리로 돌아간다손 치더라도 다시금 인파의 냉담한 반응만 느끼게 될 것이다. 결국 그녀는 드러스트를 믿기로 했다. 만약 탐정이 아니라 한낱 강도나 부랑자에 불과하더라도, 그래서 자신이 해를 입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그를 정체불명의 외지까지 데리고가줄 인도자로 선택했다.
“그건, 사무소에서 말씀드리기로 하죠.”
현재의 상황도, 드러스트도, 그의 고양이도 전부 개의치 않고 믿기로 한 그녀는 굉장히 침착해져 있었다. 침착해진 그녀의 모습은 헝클어진 머리나 헤진 옷가지가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고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드러스트는 눈앞의 여성의 변화에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곧바로 이것이 과연 어머니의 힘인가 하고 네고타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젓는 그는 원래의 멍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한참을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간 드러스트와 네고타는 허름한 판잣집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적당한 재료를 주워와 적당히 이어 붙여 만든 것인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건축물은 양쪽에 서있는 호박색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더욱 기괴하게 보였다. 드러스트는 집으로 다가가 네고타가 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연 다기보다는 붙어있는 판자중 적당한 것을 대충 뜯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조각을 뜯어내고 드러난 구멍은 사람이 드나들기 적당한 크기였다. 네고타는 먼저 들어가라고 권유하는 그의 말에 응해 서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판잣집의 내부는 허름한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깔끔한 모습이었다. 목재 벽은 투명한 물질로 코팅되어 새하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책장, 책상, 일인용 소파, 식탁, 삼인용 소파, 침대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배치해놓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 점이 내부가 잘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주고 있었다.
“자, 아가씨는 이쪽으로.”
드러스트는 정중하게 허리를 약간 숙이고 양팔로 소파를 가리켰다. 네고타는 그가 원하는 대로 3인용 소파로 걸어가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다리를 모아 단정한 자세로 앉았다.
“편하게 앉아도 괜찮아, 여기는 격식이나 따지는 곳이 아니니까.”
드러스트가 네고타의 맞은편에 있는 일인용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는 다리를 꼬고 허리를 숙여 턱을 괸 채로 네고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뚫어져라 바라보는 드러스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며 앉은 자세를 편한 자세로 바꾸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 일 얘기로 들어가 볼까.”
드러스트와 네고타는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뢰인은 자신의 아들이 실종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남편의 이기적인 행동과 지금까지 자신이 헤맨 일들을 소상히 털어놓았고, 탐정은 뒷주머니에서 꺼낸 노트에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적어나갔다.
“그리고는 바로 집을 뛰쳐나온 거죠. 그 후에 거리를 헤매다 당신을 만난 거예요.”
탐정은 네고타에게 잠시 쉬라고 한 뒤 받아 적은 내용을 훑었다. 첫 번째는 눈으로, 두 번째는 중요 단어에 표시를 하며 읽었다.
“소년, 실종…….”
읽고 단어 걸러내기를 수차례, 그는 소년과 실종이라는 두 단어를 최종적으로 남겼다. 그는 곧바로 책장에서 최근의 실종사건만을 모아놓은 파일을 꺼냈다. 그는 파일을 앞뒤로 넘기며 소년이라는 단어를 찾았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소년실종사건기사가 스크랩된 페이지에서 멈췄다. 그는 파일을 네고타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최근에 발생한 연쇄 유괴와 살인사건, 소년만을 골라잡아 죽이는 살인마 시르의 짓이 확실하다고 말이다.
“다행이군요. 범인도 알았고. 정말 그가 범인이라면 외부에 공개가 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아직 죽이지 않았다는 거겠죠?”
“상당히 똑똑한데다가 침착하기까지 하잖아? 대단한데. 확실히 그 녀석 자기가 죽인 아이들은 전부 눈에 잘 띄는 곳에 장식해버리거든. 아직 새로운 것이 발견됐다는 정보는 없으니까, 아직 죽인 건 아닐 거야.”
“그러면 앞으로 할 일은 아주 간단하군요. 그 살인마를 찾아내 제 아들을 되찾고 그를 죽여 버리면 되는 거죠? 당신이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끝나면 보수는 섭섭지 않게 줄 테니까 힘닿는 대로 도와주시면 좋겠네요.”
네고타는 방금 전과 달리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이상하리만치 살의를 드러냈다. 어느새 그녀는 피하고 있던 탐정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이 어머니의 강함에서 나오는 겉모습인 것인지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본모습인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아, 그리고 그 파일……. 제가 읽어봐도 괜찮을까요?”
네고타는 질문에 대한 탐정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파일을 빼앗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 by | 2008/02/13 13:14 | └ Craneske/SIR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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