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12일
어느날 갑자기 천사가 찾아와 라면이 먹고싶다고 말했다. 2nd Pot / 1
2nd Pot 학교에는 학생과 교사와 천사가 있다.
“어이, 일어나라 아침이야.”
아, 정말 거지같은 꿈이었어. 홀딱 벗은 날개달린 자칭 천사에게 나의 소중한 첫 키스를 빼앗기다니. 게다가 라면까지 끓여주고, 왠지 기분이 안 좋은데, 마치 눈을 뜨면 악몽이 계속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지금까지도 엄청난 악몽을 꿨지만, 일어나면 더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일~ 어~ 나~ 라~!”
아직도 꿈인가보다. 내 것이 아닌 목소리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몇 번쯤 더 꿈을 반복해야 현실로 돌아올까. 아니면 영원히 꿈에 갇힌다는 그런 얘기가 펼쳐지는 건 아니겠지.
“일어나십시오.”
다시 잠에 빠져들면 모든 게 원상복귀 되어있을 거야. 제발. 부탁입니다. 신이 있다면 내 소원 좀 들어줘봐. 네? 좀 들어주세요. 부탁입니다. 내가 아무리 특색 없는 평인이라지만 그런 변태와 평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좀 일어나라 나 지금 라면이 먹고 싶단 말야.”
내가 다신 신한테 뭐 부탁하나 봐라. 내 꿈은 내 꿈이니까 알아서 해결하라 이거지? 빌어먹을.
“이야아아아압!”
오, 내가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입니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으아아아아악!”
침대에서 호쾌하게 나가떨어진 모양이다. 엉덩이 쪽부터 찌릿찌릿한 게 꼬리뼈부터 떨어졌나보군. 그보다 아파! 꿈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아니, 꿈이 아니라는 건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인정하기 싫다. 여기서 위를 올려다보면…… 그래 저게 있다. 저 번쩍거리는 금 까마귀새끼.
“아프잖아! 이게 뭔짓입니까!”
“라면.”
그렇군. 복수로군. 어제 때린 것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 거로군. 게다가 라면, 이놈의 라면은 질리지도 않습니까. 어제 다시 나타나서는 3그릇이나 더 먹었잖아. 물론 나도 라면은 안 질린다. 하지만 저 녀석은 내가 아니잖아. 적어도 저런 녀석과 같은 레벨이라면 빌게이츠가 된다고 해도 싫다. 이건 정말 적극적으로 싫다고 나설 수 있어.
“와아, 라면이다.”
정말로 좋아한다. 어차피 나도 아침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 참에 같이 끓인 것뿐이야. 좋아하지 말란 말이다. 어서 라면이나 드세요.
“어라, 너 어디 가냐.”
“학교 간다. 학교. 너는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
그래, 학교까지 따라오게 만들면 안 되지. 어서 저 녀석에 대한 해방감을 맛보고 싶군. 학교 가는 게 이렇게 즐거운 적은 내 평생 처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름 고마운 녀석이다. 물론 절대로 고마운 녀석은 아니지만…….
“그런데, 당신 왜 일어나시는 겁니까.”
“응? 나도 따라 가려고.”
따라오지 마.
“안 되는 거야?”
안 돼.
“나도 갈래.”
절대로, 이것만큼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 학교에 쫓아온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너, 그, 옷도 안 입은 주제에 어디를 나가겠다는 거야?”
“그거라면 걱정 마.”
또 기도자세로 들어간다. 그리고 외운다. 주문을, 아니 그냥 지가 원하는 거 말하는 거잖아.
“옷 입자. 옷 입자. 옷 입자. 뭐가 좋을까. 그래 정장으로 입자. 날개도 없애고. 이제 빛나지도 않아야지.”
아 또 눈부시다. 오, 정말로 정장을 입었군. 날개도 없어졌어. 빛도 안나. 세상에, 완전히 인간이로구만, 그럼 어디 한 번.
퍼억.
“우왓! 왜 때리냐!”
“왠지 완전히 인간 이길래. 천사인 것보다는 더 쉽게 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때려봤어. 그런데 왠지 천사였을 때가 더 때리기가 쉬운 것 같군.”
투덜댄다. 투덜대면 뭐 어쩔 건데? 라면 네놈이 끓일 거냐? 아니 이런 걸로 협박 권한을 가지는 것도 왠지 인정하기 싫다. 그런데 확실히 옷을 차려 입어서 그런지 잘빠지긴 잘빠졌다. 사실 완전 알몸이라 내가 주시하지를 못하긴 했지만 근육도 적당히 붙어 있었고, 키도 큰 편이었으니까. 이정도 그림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이건가.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고, 뒤로 머리를 묶으니 엘리트 분위기가 나는 것이 일단은 천사라는 건가. 인간보다는 한 단계 위의 존재. 뭐, 행동을 보면 겉모습만 멀쩡하다는 걸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듯하지만, 일단 이정도 베이스가 되면 학교에 데려가는 것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입니까!’
변태야. 저놈은 내 입술을 훔친, 아니, 입술을 강탈한 날강도다. 권능이라는 걸로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는 억지로 키스한 불한당이다. 겉모습만 그럴싸하지 학교에 데려가도 될 만한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저놈은.
“어쨌든 오지 마. 오지 말라면 오지 마! 학교 따라 오면 앞으로 라면 안 끓여줄 거야!”
먹혔나. 아, 먹혔다. 그런데 라면으로 협박은 안하기로 했는데, 뭐 상관없겠지.
“그럼 나는 간다. 다녀와서 라면 끓여줄 테니까 가만히 기다려. 아무것도 손대면 안 돼.”
손을 흔든다. 사내놈이 배웅해 주는 것 따위 좋을까보냐. 아, 어쨌든 이걸로 한동안은 해방인건가. 오늘은 저녁 늦게 들어가도록 노력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아, 8시, 무리야! 학교까지 걸어가는 건 무리다. 늦었어! 이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지각하게 생겼잖아. 달릴까. 그래 달리면 어떻게든 도착하겠지.
콰앙.
“뭐…….”
뜀박질로 이제 몇 발자국 옮겼을 뿐인데 등 뒤로 볼링공이 떨어졌다. 근처에 볼링장도 없는데, 아니 주변에 건물도 없는데 어디서 떨어진 거냐. 비행기에서 자유낙하 실험이라도 하는 건가. 아니 그보다 지금은 일단 학교.
‘지각은 안 돼!’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늦으면 죽는다. 아니 죽지는 않을까. 어쨌든 몸에 안 좋아. 학교다! 정말 순식간에 왔구나. 시간은, 아직 10분. 5분이나 남았으니 괜찮겠지.
“후…….”
교실 문을 급히 열고 한숨을 내쉬니 교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린다. 이 시선은 그거다. 동정의 시선. 늦었구나. 뭐 대충 예상은 했지만 죽도록 뛰어온 게 왠지 아까운걸.
“이야압!”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교실이 빙그르르 돌아간다. 발이 바닥에서 떠오르더니 허공을 가르고 바닥으로 직격탄을 내리꽂는다. 오, 무릎까지 전해져오는 이 짜릿함. 미칠 듯 하구만. 어라, 잠깐 이걸로 끝이 아닙니까.
“오오~ 신기술이네.”
어떤 놈이냐 그런 무신경한 한마디를 내뱉는 놈은. 나중에 죽었어. 어쨌든 저릿저릿한 다리가 다시 허공으로, 그리고는 다시 떨어진다. 이번에는 어께부터 바닥으로 낙하. 사람 살려. 아무도 안도와줍니까. 교실에서 학생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말입니다. 좋아, 뭐 이제 끝났겠지.
“늦었어. 너!”
귀를 울리는 호통소리. 이게 무슨 여자애 목소립니까. 어디 시베리아 호랑이 목소리지. 아니 하이톤이니까 어딘가에서 들었던 공룡시대 시조새 소리.
“아니, 어쩔 수 없이 늦을 때도 있는 거야! 그렇다고 다짜고짜 사람을 메다꽂는 법이 어딨냐!”
“지각하는 버릇 고치도록 나보다 늦을 때마다 혼내주겠다고 분명이 약속 했잖아!”
그러니까 그런 약속 일방적으로 하셨잖습니까. 아, 정말 신경써주는 건 고마운데 하필이면 신경써주는 여자애가 너 하나냐고. 여자복은 지지리도 없다니까.
“최근에는 늦게 온 적 없어. 게다가 오늘은 지각도 아니잖아!”
“나보다 늦게 왔으니까 약속 이행이야. 그리고 최근에는 안 그랬으니까 같은 애매한 생각이 안 좋은 거라구!”
아, 교직원 파일이 눈앞에 나타났다.
툭. 툭.
“이놈들. 아침부터 싸움질이냐. 자리로 들어가.”
자리로 돌아가 봐야 옆자리라서 별로 소용도 없지만, 일단은 자리로 들어갔다. 옆자리에서 가벼운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분명 나를 괴롭히면서 즐기고 있는 거야. 신기술 테스트라던가 스트레스 해소. 생긴 건 예쁘장한데 격투기 마니아라서 아깝다니까. 어라, 펜을 돌리고 있다. 오늘 나를 메다꽂은 것이 어지간히 즐거운 모양이군. 뭐야 너 왜 휘청 거리냐. 아니 내가 휘청?
“어라.”
책상이 왜 가라앉습니까. 어라, 아니 잠깐만. 책상 다리가, 부러졌잖아!
“……. 뭐야 무슨 일이냐.”
보고도 모르십니까. 선생님, 책상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거기서 먼저 다치진 않았냐고 물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라고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 뭐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 그래 구체적으로 내 옆자리의 그분. 웃고 계십니다. 아니, 다들 웃고 있나.
“바보냐, 어서 일어나 앉아.”
선생님 정말 인심 한 번 야박하십니다. 하긴 이렇게 넘어진 채로 책상과 뒤섞여 있어봐야 별로 의미도 없지만, 그래 세상은 원래 야박한 거야.
“괜찮냐?”
옆자리의 그분께서 물어보신다. 어쩐 일이십니까. 평소엔 나를 뒤집어 넘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더니 내 몸 걱정을 해주시는 겁니까. 표정이 정말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어. 감동이 막 밀려오려고 하는 것만 같아. 감동 대 돌진이라는 느낌이다. 세상 오래살고 볼일이라니까. 이런 신기한 장면도 볼 수 있다니.
“조심해. 그러다 다치면 꼭 내 기술에 걸려서 다친 것 같잖아.”
예……. 예. 어련하시겠어!
“선생님, 책상 가지러 다녀오겠습니다.”
교실 밖으로 나갔다. 요즘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군. 하늘에서 볼링공이 떨어진다거나, 책상다리가 갑자기 부러진다거나. 뭐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는 것 보다는 낫지. 암. 그렇고말고.
“안녕. 어디가는거니?”
음? 국어선생님께서 여긴 왜 오셨지? 수업이 없으신가. 손수 옥상까지 책상을 가지러 온 건 아닐 텐데. 유명하시잖우 그 미모로 남학생들 부려먹기.
“책상 가지러 왔죠. 아침부터 책상다리가 부러졌거든요.”
“어머, 그거 참 당황스러웠겠구나.”
암요. 당황스럽죠. 선생님은 학생 걱정은 하나도 안 해주시지, 반애들은 웃지, 그분은 미묘하게 어긋난 걱정을 해주시더랍니다. 당황스럽죠.
“예, 당황…….”
뭡니까! 무서운 속도로 제 얼굴을 스쳐지나가 철퍽 하는 소리를 내며 벽에서 흘러내리는 저 물건은 무엇입니까! 카레라이스? 아니 하이라이스? 아니 누가 던진 거지? 선생님이 던지신 겁니까? 교사가 학생한테 하이라이스를 던져요? 그것도 얼굴 직격으로. 안 피했으면 얼굴이 하이라이스 범벅? 신 메뉴 개발이라도 하는 중이십니까!
# by | 2008/02/12 09:58 | └ 어느날천사라면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